목차
프롤로그: 억울함은 부메랑이다.
1. 결혼 안 해? 가 아닌 결혼을 왜 해? 라고 묻는 세상에서 결혼하기
2. 임신과 출산은 억지 규칙으로 가득 찬 세상이었다.
3. 그들만을 위한 육아서의 범람
4. 이상적 육아라는 이상한 육아
5. 유용한 사교육의 유해성
6. 사랑하면 괜찮은 걸까?
에필로그: 자녀의 정직한 독립을 꿈꾸며
자녀가 나중에 뒤쳐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부모의 완벽주의를 더욱 부추긴다. - 클라우스 베를레의 책, 완벽주의의 함정
이 책은 빌리려고 했던 건 아니었는데,
그 근처에 있던 책을 고르던 와중에 눈에 들어온 제목입니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아마도 그렇겠지만) 요즘 흥미가 가서 읽는 책들이 대부분 사회학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사회학을 강의하고 있고 사회학에 대한 책을 많이 쓰고있는 작가의 여러 책 중에 하나라는 점도 관심이 갔습니다. 특히나 '불평불만 투덜이 사회학자'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흥미로웠습니다. 저도 불평불만이 꽤 있는 편인데, 인생을 살아가는 것에 있어 불평불만이 많다는 것은 그렇게 긍정적이진 않더라구요. 그래서 꽤나 참으려고 오랜 시간 노력하며 살았었는데 불평불만 투덜이 사회학자라는 타이틀을 가진 사람이라니! 공식적으로 그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전문 사회학자의 투덜거림에 대한 강렬한 호기심이 일었습니다.
단숨에 읽고 나니, 어느부분은 공감이 되기도, 어느부분은 뭐 이렇게까지야..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전반적으로 재밌었던 책이었습니다. 그러고보니, 사회학이란 흥미로운 학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문의 관점으로 접근하자면 제 주변에서 빙글빙글 돌아가는 세상일들이 어떻게든 해석된다면 이해가 안된다고 씩씩거릴만한 일들도 이해가 되서 넘어가게 되는 일들도 분명 있겠지요.
육아 문제는 한국 사회의 연애, 결혼, 출산에 관한 궤적과 이어져 있다. 사람들은 현실론이라는 주판을 두들기며 타인과의 만남을 계산한다. 연애할지, 결혼할지, 출산할지를 말이다. 부모는 이 갈림길에서 'YES'를 선택했다. 디지털 사회에서 결혼과 육아는 굉장히 우아하게 달라진 것 같지만 현실은 거대한 바다를 헤엄쳐야만 하기에 부모는 물갈퀴를 멈출 수 없다. 이 책은 그 물갈퀴가 이상한 방향으로 자녀를 이끌고 있음에 주목했다. 20년 후, 자녀의 '정직한 독립'을 꿈꾸는 부모에게 오늘의 육아는 그 독립을 위한 밑거름이다. 자녀가 그릇된 사회에서 버티기 위한 생존의 테크닉만을 몸에 지닌 채 우리는 이 모순된 사회에 계속 굴복하고 살 것인가, 천천히 함께 변화를 만들어갈 것인가!
(YSE! YES! YES! YES 쓰리콤보!!!) 별 생각없이 한 선택이었는데, 이것만으로도 지금의 세대와 제 세대는 다르다는게 명확하네요. 저는 이 삼종세트를 선택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그것이 바로 지금 세대 바로 전세대까지라고 구분짓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당연하다고 생각한 선택 역시도, 사회학 관점에서 설명될 수 있다는 것도 흥미로웠습니다. 저자는 '정직한 독립'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무슨 뜻인지 정확히 알수 없어도 와닿는 단어였습니다. 지금의 청년들이 과연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고 결혼을 한다고 하여도 그것이 좀처럼 독립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느낌이 종종 들었었기 때문입니다.
사춘기는 한때는 '한때'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사춘기는 한때라는 말은 더 이상 적절하지 않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지금껏 질풍노도가 10대의 전유물이었던 이유는 대략 그때쯤이 상상의 날개를 접고 현실을 자각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지금껏 내가 알던 가상의 세상과 마주할 진짜 세상이 다름을 인지하고 그래서 자신의 꿈이 허황되었음을 인정해야 하니 어찌 괴롭지 않겠는다. 세상이 생각 이상으로 잔인하다는 것을 알아가는 두려움과 그럼에도 자신은 예외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교차하니 질풍노도는 당연한 결과다. 20대가 되면 이 간격이 현저히 줄어든다. 상상력과 허세가 동시에 고갈되어 사람들은 그저 평온하고 평범하게 살아간다. 20대가 되면 질풍노도였던 과거를 '그땐 그랬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현실에 빠르게 적응한다. 그러니 사춘기는 '한때'에 불과했다.
그런데 작금의 한국 사회에서는 모두가 사춘기를 겪는다. 일단 빨라졌다. 부모는 안쓰러운 자녀에게 과거보다 훨씬 빨리 개입한다. 미래 계획이 정교할수록 아이의 꿈은 협소해진다. 아이들이 멋대로 꿈꿀 수 있는 시간적 시효는 짧아졌고, 자신이 세상에서 낙오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느끼는 시기는 빨라졌다. 여기서 좌불안석하지 않을 수 있을까.
또한 사춘기는 길어졌다. 불안이 도무지 끝나지 않는다. 그러니 적당히 나이가 들어도 계속 사춘기다. 지금까지는 청소년기가 불안한 비래에 대한 발버둥이었다면, 청년기는 구체적인 목표를 향한 힘차고 또 그만큼 효과가 있는 발걸음이었기에 '사춘기'가 종료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청년기로 진입해도 혼돈 없는 안정적 삶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는커녕 기획조차 불가능하다. 자유롭게 술 마실 수 있고 투표권이 생긴 것을 제외하면 청소년기와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니 요즘 청년들을 '애'라고 불러도 어색하지 않다. 부양받아야 하는 다 큰 존재는 이처럼 처량하다. 20대의 사망 원인 중 1위가 자살이다. 끝날 줄 알았던 사춘기가 끝나지 않으니 정신적으로 무너지는 사람이 많을 수 밖에 없다.
청년 사춘기의 문제는 지금껏 투자한 것이 너무 많다는 데 있다. 초등학교 3학년이면 겪는 '이른' 사춘기가 '해야 할 것'이 갑작스럽게 많아져서 나타나는 것이라면 청년들의 끝나지 않는 질풍노도는 '해도 안되더라'는 절망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리 대단한 꿈을 꾼 것도 아니었다. NASA에서 우주선을 만들 생각을 했던 것도 아니고 UN에 취업해 전 세계를 돌아다니길 희망했던 것도 아니다. 연봉 5000만원을 원한 것도 아니다. 이들은 분수를 잘 안다. 그래서 그냥 1인분만 제대로 부양하길 기대하면서 초등학생이 되기 전부터 사교육에 매진했지만 결과가 없다. 과거보다 더 많이 공부했고 더 늦게까지 대학에 머무르며 온갖 스펙으로 무장했는데도 보상이 별로 없다. 반복된 실패 속에 청년들은 결국 사회로부터 스스로를 고립시킨다.
사회 초년생이던 시절,
엑셀 표를 만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굉장히 심플한 엑셀 표였습니다.
몇 살까지 일한다고 가정했을 때, 몇 살 이후에 월 300만원의 현금 흐름을 만드려면, 얼만큼을 저금해야 하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대충 60세 이후 월 300만원을 쓰면서 살려면 지금부터도 60세까지 월 300만원을 쓰고 나머지는 저축을 하면서 살아야된다는 셈이 대충 나왔고 그러니까 저는 그 시점부터 죽을때까지 월 300만원으로 살아야된다는 참으로 우스운 계산이었습니다. 그 때는 그 결과가 어찌나 우스웠는지, 60세 이후로 근근히 살아가기 위해 지금부터 60세까지 근근히 살아야 하다니 나는 평생 근근히 살아가야하는 꼴이구나. 라며 깔깔대고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지만 40이 넘은 지금 생각하면 월 300이라는 돈은 평범하지만 결코 쉽게 만들어지는 돈은 아닙니다. 근근하기도 힘든 세상이 지금 세상이니, 20대의 사회학과 40대의 사회학은 참으로 다른 느낌입니다. 이 책 역시도 무엇인가를 구체적으로 제안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현상을 개인의 시각으로 풀어냅니다. 그 안에서 자신이 어떤 느낌을 받을지는 오로지 자신의 몫이겠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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